COLOR THEORY 01: 색의 원리와 빛의 관계 - 색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어린 시절, 빗물 웅덩이 위에 기름이 번져있는 걸 본 적 있는가? 그 위로 무지갯빛 영롱한 색들이 춤추듯 흐르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엔 투명했을 기름이 갑자기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는 걸 보면서, 문득 색이란 게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했었다. 오늘은 이런 일상 속 신비로움에서 출발해 빛과 색의 관계를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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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배경 위에 다양한 색상의 아치형 레이어가 중첩된 이미지. 하단에서부터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핑크색, 보라색, 파란색, 청록색 순으로 무지개 색상의 부드러운 곡선이 겹쳐져 있다. 각 색상 레이어는 매끄럽고 선명한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반원형 형태로 쌓여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무지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선명한 색상 대비와 웨이브 형태가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빛이 없으면 색도 없다

캄캄한 밤, 불을 끄고 방 안을 둘러보면 아무리 화려한 그림이나 알록달록한 옷들도 모두 검은색으로 보일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건 색의 본질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빛이 없으면 색도 없다. 우리가 보는 빛은 사실 전자기파의 한 종류다. 전자기파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우주를 떠도는 에너지 파동이다. 이 파동들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라디오파(가장 긴 파장),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가장 짧은 파장) 순으로 이어진다.

전자기 스펙트럼 다이어그램: 라디오파부터 감마선까지의 파장, 주파수, 대기 투과율, 비교 크기를 보여주며 파장별 온도 정보와 함께 시각적으로 정리한 NASA 기반 차트

전자기 스펙트럼은 라디오파부터 감마선까지 모든 형태의 전자기 복사를 포함한다. 흥미롭게도, 인간이 가시광선을 볼 수 있게 진화한 이유는 이 파장대가 우리 태양이 가장 강하게 방출하는 영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Credit: Inductiveload, NASA,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이 중에서 우리 눈이 감지할 수 있는 건 오직 가시광선뿐이다. 전체 전자기파를 피아노 건반에 비유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88개 건반 중 단 1개 정도에 불과하다. 정말 좁은 영역이지 않은가? 가시광선의 파장은 대략 380 나노미터에서 780 나노미터 사이다. 나노미터가 얼마나 작은지 감이 안 온다고? 머리카락 한 올의 지름이 약 10만 나노미터 정도다. 빛의 파장이 얼마나 미세한지 짐작이 가는가? 이 좁은 구간 안에서도 파장에 따라 우리는 다른 색을 인식한다. 파장이 짧은 쪽이 보라색(380-450nm), 긴 쪽이 빨간색(620-780nm)이다. 그 사이에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이 순서대로 자리하고 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이 색이 되기까지

그럼 이 빛이 어떻게 색으로 변할까? 답은 우리 눈 속에 있다. 망막에는 두 종류의 광수용체 세포가 있다. 어두운 곳에서 활약하는 간상세포와 밝은 곳에서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다. 간상세포는 약 1억 2천만 개로 빛의 밝기만 감지한다. 원추세포는 약 600만 개로 색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원추세포는 세 종류로 나뉜다. S형(Short-짧은 파장), M형(Medium-중간 파장), L형(Long-긴 파장)이다. 쉽게 말하면 파란색, 초록색, 빨간색을 담당하는 셋이라고 보면 된다.

빛이 눈으로 들어오면 거치는 과정

1. 각막과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망막에 도달 2.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각자 반응 3. 신경 신호로 변환되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 4. 뇌의 시각피질에서 신호를 종합해 '색'으로 해석

마치 세 가지 물감으로 수많은 색을 만들어내듯, 이 세 종류의 세포 반응 조합으로 우리는 대략 700만 가지가 넘는 색을 구분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동물마다 이 시스템이 다르다. 개는 원추세포가 두 종류뿐이라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반면 새는 네 종류나 되어 자외선까지 볼 수 있다. 가자미 같은 일부 물고기는 다섯 종류의 원추세포를 가졌다. 우리보다 훨씬 화려한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지개를 만드는 마법, 프리즘

1666년, 아이작 뉴턴이 어두운 방에서 놀라운 실험을 했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을 삼각형 유리, 즉 프리즘에 통과시켰더니 벽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하얀빛이 여러 색으로 분리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분리된 색들을 다시 모으니 원래의 하얀빛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이 실험으로 뉴턴은 "백색광은 여러 색이 섞인 것"이라는 혁명적 발견을 했다. 프리즘이 빛을 분리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바로 굴절이다. 빛이 다른 매질을 만나면 속도가 바뀌면서 방향이 꺾인다. 이때 파장이 짧은 빛일수록 더 많이 꺾인다. 보라색이 가장 많이, 빨간색이 가장 적게 꺾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얀빛 속에 섞여 있던 여러 색들이 각자 다른 각도로 나아가면서 분리된다.

빛이 유리 프리즘을 통과하며 흰색 광선이 무지개 스펙트럼으로 분산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검은 배경 위에 삼각형 프리즘과 분광된 색상 스펙트럼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프리즘 속에서 빛이 굴절되는 정도는 파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짧은 파장의 보라색은 가장 많이 굴절되고 긴 파장의 빨간색은 가장 적게 굴절된다. 이 원리는 현대 광학 기술과 색채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Credit: Suidroot, Prism-rainbow-black,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빗방울도 작은 프리즘 역할을 한다. 비 온 뒤 무지개가 생기는 것도 같은 원리다. 무지개를 보려면 태양을 등지고 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빗방울 속에서 굴절과 반사를 거친 빛이 우리 눈으로 들어오는 각도가 딱 맞아떨어질 때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색의 존재를 묻다

여기서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자. 색이란 정말 존재하는 걸까? 물리학적으로 보면 색이란 건 없다. 있는 건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뿐이다. 700 나노미터 파장의 빛이 '빨간색'인 건 아니다. 그저 우리 뇌가 그 파장을 '빨간색'이라고 해석할 뿐이다.

빨간 사과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보는 그 '빨간색'은 사과 자체에 들어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1. 태양빛(모든 색이 섞인 백색광)이 사과에 닿는다. 2. 사과 표면은 빨간색 파장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한다. 3. 반사된 빨간색 파장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4. 뇌가 "이건 빨간색이다"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사과는 왜 빨간색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할까? 이건 사과 껍질에 있는 분자들의 화학적 구조 때문이다. 사과 껍질에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는 색소 분자가 있다. 이 분자의 구조가 색의 비밀을 쥐고 있다. 빛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분자 내의 전자들은 특정 에너지만 흡수할 수 있다. 안토시아닌의 전자들은 파란색이나 초록색 파장이 가진 에너지와 딱 맞아떨어져서 그것들을 쏙쏙 흡수한다. 하지만 빨간색 파장의 에너지는 맞지 않아서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낸다. 이걸 쉽게 비유하자면 특정 주파수에만 반응하는 라디오 같은 거다. 안토시아닌 분자라는 라디오는 빨간색을 제외한 다른 색의 "주파수"에 맞춰져 있어서, 그것들만 받아들이고 빨간색은 소화하지 못하는 셈이다. 결국 색은 빛과 물체, 그리고 우리 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사과가 빨간색으로 보이는 건, 사과 껍질의 분자 구조가 빨간색 빛만 반사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우리 뇌가 그 반사된 빛을 '빨간색'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색이 진짜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물리적으로는 파장만 있을 뿐이지만, 화학적으로는 그 파장을 선택적으로 반사하는 분자 구조가 있고, 생물학적으로는 그걸 색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뇌가 있다. 이 모든 게 합쳐져야 비로소 '색'이라는 경험이 만들어진다.

뇌가 만들어내는 색의 세계

더 놀라운 예가 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자. 화면에서 노란색을 어떻게 만들까? 실제로는 빨간색과 초록색 픽셀을 동시에 켠다. 물리적으로는 노란색 파장(약 580nm)의 빛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란색을 본다. 왜일까? 우리 눈의 원추세포는 정확한 파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특정 범위에 반응한다. 빨간색 원추세포(L형)와 초록색 원추세포(M형)가 동시에 자극받으면, 뇌는 "이 조합은 노란색이다"라고 판단한다. 진짜 노란색 파장이 들어왔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건 마치 맛의 세계와 비슷하다. 딸기맛 사탕에는 실제 딸기가 없어도 우리는 '딸기맛'이라고 느낀다. 색도 마찬가지다. 뇌가 인식하는 게 곧 현실이 된다. 색맹인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적록색맹인 사람에게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비슷하게 보인다. 그들에게는 그게 현실이다. '정상' 색각을 가진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더 나아가 '내가 보는 빨간색'과 '당신이 보는 빨간색'이 정말 같을까? 우리 모두 빨간 사과를 보고 "빨간색"이라고 부르지만, 각자의 뇌에서 그 색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색은 주관적 경험의 영역이다.

일상 속 빛과 색의 마법

우리 주변엔 빛과 색의 신비가 가득하다. 비눗방울의 무지개색, CD 표면의 영롱한 빛, 새벽하늘의 붉은 노을... 이 모든 현상 뒤에는 빛의 파동성과 우리 시각 시스템의 놀라운 작동 원리가 숨어있다. 특히 우리가 매일 보는 스마트폰이나 TV 화면은 빛의 가산혼합을 이용한 기술의 결정체다. 수백만 개의 작은 픽셀들이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빛만으로 자연의 모든 색을 재현해 낸다.

색채의 문을 열며

빛과 색의 관계를 아는 것은 색채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열쇠다. 빛이 없으면 색도 없고, 우리 눈과 뇌가 없으면 색은 의미가 없다. 물리적 현상과 생리적 인식, 그리고 주관적 경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게 바로 색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색들이 어떻게 섞이고,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차근차근 살펴볼 것이다. 색의 세계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이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매혹적인 영역이다.

다음에 햇살이 프리즘을 통과하거나, 비 온 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볼 때, 오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도 놀라운 과학의 비밀이 숨어있다. 색을 안다는 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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