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THEORY 03: 색의 3요소 완벽 가이드 - 색상, 명도, 채도 이해하기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는가? "그거 있잖아, 약간 연한 하늘색? 아니다, 민트색에 가까운데... 음, 청록색이라고 해야 하나?" 색을 말로 표현하는 건 참 어렵다. 내가 보는 색과 상대방이 상상하는 색이 같을 리 없다. 그래서 인류는 오랜 세월 색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오늘은 색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와 색채 언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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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THEORY 1편 - 색의 원리와 빛의 관계 - 색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색상 팔레트 차트: 10행 15열로 구성된 컬러 그리드. 가로축은 색상환(color wheel)을 따라 빨강, 주황, 노랑, 연두, 초록, 청록, 파랑, 남색, 보라, 자주색까지 15가지 색상이 배열되어 있다. 세로축은 색상의 명도와 채도 변화를 보여주며, 상단 행은 매우 연한 파스텔톤으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채도가 높아지고 명도는 낮아진다.

색의 DNA, 색상(Hue)

색상(Hue)은 색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이다. 마치 사람의 이름처럼, 색을 부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성이다. "빨강", "파랑", "노랑"처럼 말이다. 색상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지개를 떠올리는 것이다. 비 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면 색들이 순서대로 늘어서 있다. 빨강에서 시작해서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까지. 이 순서가 바로 색상의 기본 배열이다. 이 무지개를 동그랗게 구부려서 끝과 끝을 이어 붙인다고 상상해 보자. 보라 다음에 다시 빨강이 오도록 말이다. 이게 바로 색상환이다. 둥근 시계처럼 생겨서 색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이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색상환은 12개 색으로 만든다. 시계 숫자처럼 12개 자리에 각각 다른 색이 놓인다. 12시 자리에 빨강, 2시에 주황, 4시에 노랑, 이런 식으로 배치된다. 더 정밀하게 나타내고 싶으면 360도로 나눈다. 빨강이 0도, 노랑이 60도, 초록이 120도, 시안이 180도, 파랑이 240도, 마젠타가 300도 정도... 이렇게 각도로 표현하면 매우 정확하게 색상을 지정할 수 있다.

360도 휴 앵글 컬러 휠(Hue Angle Color Wheel) 다이어그램. 원형 그라데이션 색상환을 중심으로 0도부터 330도까지 30도 간격으로 각도가 표시되어 있다. 각 각도 위치에 해당하는 12가지 주요 색상(Red, Orange, Yellow, Chartreuse green, Green, Spring green, Cyan, Azure, Blue, Violet, Magenta, Rose)이 사각형 색상 견본과 함께 표시되어 있으며, 색상명이 영문으로 기재되어 있다. HSB/HSV 색상 모델의 색조 값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디자인 프로그램을 써본 적이 있다면, 색상 선택창에서 이런 숫자들을 본 기억이 날 거다. 거기서 H라고 표시된 게 바로 이 색상(Hue) 각도다. 웹 디자이너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180도 톤으로 가자"라고 말하면, 정확히 시안색을 쓰자는 뜻이다. 색상이 뭔지 더 확실히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빨간색 티셔츠가 있다고 하자. 햇빛 아래서 보면 선명한 빨강이고, 그늘에서 보면 어두운 빨강이 된다. 또 멀리서 보면 연한 빨강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밝기나 선명도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빨간색 계열'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때 변하지 않는 그 '빨간색다움'이 바로 색상이다. 아침 햇살에 비친 장미와 석양 노을 속의 장미를 떠올려보자.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둘 다 '장미의 빨강'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이 변하지 않는 '빨간색다움'이 바로 색상의 본질이다. 하지만 색상만으로는 색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빨간색 페인트 좀 사 와"라고 부탁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페인트 가게에 가면 수십 가지 빨간색이 있을 것이다. 진한 와인색, 밝은 체리색, 연한 분홍색, 탁한 벽돌색... 이들은 모두 '빨간색 계열'이지만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색상은 같은데 뭔가 다른 요소들이 더해진 것이다. 실제로 순수한 색상만 딱 떼어내서 보기는 어렵다. 프리즘으로 햇빛을 분해했을 때 나오는 무지개나, 레이저 포인터의 빛 정도가 순수한 색상에 가깝다. 우리 일상에서 보는 모든 색들은 색상에 밝기, 선명도 같은 다른 특성들이 섞여 있는 상태다. 그래서 색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색상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색상은 색의 기본 정체성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색의 전체 모습을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사람을 설명할 때 이름만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말이다. 색상은 색의 DNA라고 할 수 있다. 기본 유전 정보는 담고 있지만,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된다. 똑같은 빨강 유전자를 가졌어도, 어떤 건 정열적인 진홍색이 되고, 어떤 건 수줍은 분홍색이 된다. 이 무한한 변주가 바로 색의 매력이다. 미술이나 디자인 전공하는 친구들은 색상을 '휴(Hue)'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이거 무슨 색이야?"라고 물을 때 그 '무슨 색'에 해당하는 게 바로 휴다.

밝음과 어둠의 스펙트럼, 명도(Value)

명도는 색이 얼마나 밝은지, 어두운지를 나타내는 특성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방의 조명을 어둡게 하면 모든 색이 어두워지고, 밝게 하면 밝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휴대폰 화면 밝기를 조절하는 걸 생각해 보자. 같은 화면인데 밝기를 올리면 모든 색이 밝아지고, 낮추면 어두워진다. 이때 변하는 게 바로 명도다. 색상은 그대로인데 밝고 어두움만 달라진다. 흑백사진이 명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흑백사진에는 색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물의 형태를 알아보고, 멀고 가까움을 느낄 수 있다. 오직 밝고 어두운 차이만으로도 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셈이다.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눈은 색상보다 명도 차이에 훨씬 더 민감하다. 어두운 방에서도 가구에 부딪히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명도 감지 능력 덕분이다. 그래서 디자인할 때도 명도 대비가 중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색을 써도 명도 차이가 없으면 흐릿하고 답답해 보인다. 명도는 보통 0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표현한다. 0이 가장 어두운 검정색, 10이 가장 밝은 흰색이다. 컴퓨터에서는 0%부터 100%로 나타내기도 한다.

명도 스케일(Value Scale) 다이어그램. 흰색(10)부터 검정색(0)까지 11단계로 구분된 그레이스케일을 보여준다. 상단에는 'VALUE SCALE'이라는 제목이 있으며, 명도 구간은 'High Key'(10-7), 'Middle Value'(6-4), 'Low Key'(3-0)로 구분되어 있다. 추가로 'Light tones'(9-7), 'Middle tones'(6-4), 'Dark tones'(3-1)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양 끝에는 'White'(10)와 'Black'(0)이 표시되어 있다. 각 명도 단계는 균일한 간격의 회색 사각형으로 시각화되어 있다.

여기서 꽤 흥미로운 발견이 있다. 순수한 색들도 저마다 타고난 명도가 있다는 점이다. 노란색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어둡게 만들어도 파란색보다는 밝아 보인다. 반대로 파란색이나 보라색은 아무리 밝게 해도 노란색만큼 밝아지지 않는다. 색마다 기본 성격이 있는 셈이다. 색채학에서는 이걸 "고유 명도" 또는 "본질적 명도"라고 부른다. 마치 사람마다 타고난 키가 다르듯, 색상도 저마다 타고난 밝기가 다른 것이다.

360도 휴 앵글 컬러 휠의 흑백 버전. 각 색상의 고유 명도가 회색 톤으로 표현되어 노란색 영역이 가장 밝고 파란색과 보라색 영역이 가장 어둡게 나타남. 0도부터 330도까지 30도 간격으로 표시된 12가지 색상의 본질적 밝기 차이를 보여주는 명도 대비 다이어그램.

360도 색상환을 흑백으로 변환하니 각 색상의 고유 명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노란색(60도)과 차트리우스 그린(90도) 부분이 가장 밝은 회색으로 나타나고, 파란색(240도)과 보라색(270도) 부분이 가장 어두운 회색으로 표시된다. 빨간색(0도)과 초록색(120도)은 중간 정도의 회색 톤을 보여준다.

이런 고유 명도 차이를 알면 색 조합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노란색과 보라색을 나란히 두면 강한 명도 대비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빨강과 초록처럼 비슷한 명도의 색을 쓰면, 아무리 색상이 달라도 명도 대비가 약해서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 디자인이나 그림 작업할 때 명도가 적절한지 확인하려면 위의 이미지처럼 작품을 흑백으로 바꿔보면 된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흑백 필터를 써도 좋고, 포토샵에서 채도를 0으로 만들어도 된다. 컬러일 때는 멋져 보였는데 흑백으로 바꾸니까 밋밋하다면? 명도 대비가 부족한 탓이다. 좀 더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을 섞어 써야 한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은 명도를 '밸류(Value)' 또는 '라이트니스(Lightness)'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보는 밝고 어두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색의 순수함을 측정하는 채도(Chroma)

채도는 색이 얼마나 순수한지, 즉 그 색 본연의 성질을 얼마나 잘 간직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색의 '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자. 새로 산 빨간 티셔츠가 있다. 처음엔 선명한 빨간색이었는데, 몇 번 빨래하고 나니 색이 바랬다. 여전히 빨간색이긴 한데, 뭔가 힘이 빠진 느낌이다. 이게 바로 채도가 낮아진 경우다. 빨간색의 순수함이 떨어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금의 순도를 생각해 보자. 24K 순금은 짙고 순수한 노란색을 띤다. 그런데 18K, 14K로 갈수록 다른 금속이 섞이면서 금 본연의 색이 희석된다. 같은 '금색'이지만 순도가 낮아질수록 채도도 함께 떨어지는 셈이다. 10K쯤 되면 거의 은색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순수한 색에 뭔가 다른 것이 섞이면 채도가 떨어진다. 회색을 섞든, 흰색을 섞든, 검정을 섞든 다른 어떤 색을 섞어도 색의 순수함이 손상되면서 채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색을 너무 많이 섞으면 결국 원래의 색상 특성이 사라지고 짙은 회색이나 탁한 갈색만 남는다. 이렇게 색상 특성이 거의 없는 상태를 무채색이라고 한다.

채도(Chroma)와 명도(Value)의 관계를 보여주는 색상 차트. 빨간색 계열을 사용하여 만든 격자 형태의 다이어그램으로, 세로축(Y축)은 명도(Value)를 10(흰색)부터 0(검정)까지 표시하고, 가로축(X축)은 명도에 따라 가능한 최대 채도 범위를 보여준다. 상단에는 'Higher chroma (Chroma 100%)'가 표시되어 있고, 하단에는 'Higher value'와 'Lower value'가 양쪽에 표시되어 있다. 중앙에는 '순수한 색상에 다른 색을 섞을수록 채도는 떨어진다(The more you mix other colors with a pure color, the more its chroma decreases)'라는 설명문이 있다. 차트의 색상은 위쪽에서 순수한 빨간색으로 시작하여 아래로 갈수록 채도가 감소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명도가 감소한다.

맑은 날과 안개 낀 날의 풍경을 비교해 봐도 좋다. 맑은 날엔 단풍이 순수한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빛난다. 하지만 안개가 끼면 같은 단풍이라도 뿌옇고 흐릿하게 보인다. 색상은 같은데 안개 입자들이 섞이면서 색의 순수함이 떨어진 탓이다.

색상의 기본 속성과 변형 방법을 보여주는 교육용 다이어그램. 상단에는 '기본 색상 속성(Hue, Saturation, Chroma, Intensity)과 변형 방법(Tint, Tone, Shade)'이라는 제목과 설명이 있다. 다이어그램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왼쪽은 색상 변형 기법을 보여주고 오른쪽은 세 가지 주요 색상 속성의 변화를 시각화한다. 각 속성은 'High'에서 'Low'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하단에는 8단계로 구분된 색상 견본 그리드가 있으며, 파란색의 틴트(위쪽 행), 톤(중간 행), 쉐이드(아래쪽 행) 변화를 보여준다.

파란색 기본 색상(Hue)에 흰색을 섞으면 틴트(Tint), 회색을 섞으면 톤(Tone), 검정을 섞으면 쉐이드(Shade)가 된다. 포화도(Saturation)는 순수한 파란색에서 흰색으로, 크로마(Chroma)는 순수한 파란색에서 회색으로, 강도(Intensity)는 순수한 파란색에서 검정으로 변화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연에서 정말 선명한 색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자연물은 중간 정도의 채도를 가진다. 흙, 돌, 나무껍질, 잎사귀... 다 조금씩 탁하다. 정말 선명한 색은 열대 바다의 물고기, 일부 꽃잎, 새의 깃털 정도에서나 볼 수 있다. 도시 환경은 더하다.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 도로, 회색 보도블록... 거의 다 저채도 색들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가끔 선명한 색을 보면 확 눈에 띈다. 광고판이나 안전 표지판에 선명한 색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들이 로고에 선명한 색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맥도날드의 빨간색과 노란색, 이케아의 파란색과 노란색... 다 고채도 색상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다. 채도를 이해하면 색 조합이 한결 쉬워진다. 모든 색이 선명하면 시끄럽고, 모든 색이 탁하면 우울하다. 선명한 색 하나에 차분한 색들을 조합하면 균형 잡힌 느낌을 줄 수 있다. 인테리어 할 때도 이 원리를 활용할 수 있다. 거실 전체를 선명한 색으로 칠하면 금세 식상해진다. 대신 벽은 저채도로 차분하게 하고, 쿠션이나 그림 같은 포인트 아이템으로 고채도 색을 쓰면 세련된 공간이 된다. 옷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광색으로 치장하면 부담스럽지만, 베이직한 옷에 선명한 색 스카프나 가방을 매치하면 포인트가 살아난다. 채도는 '크로마(Chroma)'나 '세츄레이션(Saturation)'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매일 보는 선명하고 탁함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색 이름의 진화, 인류의 색채 인식 역사

이제 색의 3요소를 알았으니 색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색상 30도의 주황색, 명도 7, 채도 8"이라고 말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정확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색 명명은 흥미로운 패턴을 보인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가장 먼저 생긴 색 이름은 '밝음'과 '어두움'의 구분이었다. 그다음이 보통 빨강, 이어서 노랑이나 초록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파랑은 꽤 늦게 나타난다. 한국어의 색채 어휘도 비슷한 발달 과정을 거쳤다. '파랗다'는 조선시대 문헌에 그리 흔하지 않았고, '푸르다'가 파랑과 초록을 함께 아우르는 표현이었다. 지금도 '푸른 하늘'과 '푸른 숲'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일본어에서도 '아오이(青い)'가 파란색과 초록색을 모두 가리키는 현상이 나타난다. 교통신호에서 초록색 신호를 아오신고우(青信号, 파란 신호)'라고 부르는 것이 이런 언어적 특성의 흥미로운 예다. 현대에 이르러 색 이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수많은 색 이름이 만들어졌다. '미드나이트 블루', '코랄 핑크', '세룰리안블루' 같은 이름들은 단순한 색상 정보를 넘어 특정한 이미지와 감성까지 전달한다.

색채 표준화를 향한 여정

색을 정확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은 20세기 들어 본격화됐다. 1905년, 미국의 화가 앨버트 H. 먼셀(Albert H. Munsell)이 개발한 '먼셀 색 체계'는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색을 색상(Hue), 명도(Value), 채도(Chroma)의 3차원으로 체계화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색의 3요소 개념이 바로 여기서 확립된 것이다. 이후 다양한 색 체계가 개발됐다. 1931년 설립된 CIE(Commission Internationale de l'Eclairage, 국제조명위원회)는 색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표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색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재현하는 과학적 기반이 됐다. 1963년에는 로렌스 허버트가 팬톤(Pantone) 색상 매칭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쇄 업계의 혁명이었다. 팬톤 번호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색을 인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팬톤 186C"라고 하면 뉴욕에서든 도쿄에서든 똑같은 빨간색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또 다른 표현 방식들이 등장했다. RGB값(빨강, 초록, 파랑의 조합), CMYK값(인쇄용 4색), 16진수 컬러코드(#FF0000 같은) 등이다. 웹 디자이너들은 'CSS 컬러'라는 표준화된 색 이름 140여 개를 사용한다. 'Tomato', 'DodgerBlue' 같은 이름들이 정확한 색상값과 매칭되어 있다.

색 언어의 문화적 차이와 인지

언어가 색 인지에 미치는 영향은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2007년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연한 파랑(goluboy)과 진한 파랑(siniy)을 더 빨리 구분한다고 한다. 두 색을 다른 단어로 부르기 때문에 인지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다니족은 색 단어가 '밝은 색(mola)'과 '어두운 색(mili)' 둘뿐이다. 하지만 색 구분 능력 자체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동일하다. 언어적 표현이 제한적일 뿐이다. 현대 마케팅에서 색 이름은 강력한 도구가 됐다. '샴페인 골드'가 '베이지'보다 고급스럽게 느껴지고, '로즈 쿼츠'가 '연분홍'보다 세련돼 보인다. 같은 색이라도 이름에 따라 제품의 인지 가치가 달라진다. 한국의 전통 색명도 독특하다. '하늘색', '분홍', '연두'처럼 자연물에서 따온 이름들이 많다. 이는 색을 추상적 개념보다는 구체적 사물과 연결 지어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색채 언어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색채 언어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팬톤 번호로, 웹 개발자는 헥스 코드로, 화가는 여전히 전통적인 색 이름으로 소통한다. 이런 다양성이 때로는 혼란을 주기도 한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모니터마다, 인쇄물마다 다르게 보인다. 완벽한 색 재현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이 색채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확한 색 표현도 중요하지만, '석양빛 주황'이나 '봄날의 연둣빛' 같은 시적 표현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색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감성과 문화, 기억이 어우러진 종합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색채 언어의 미래

색의 3요소를 이해하면 색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막연히 '예쁜 색'이라고만 느꼈던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색 선택과 조합도 더욱 의도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론은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색채 감각은 끊임없는 관찰과 실습을 통해 기른다. 주변 색들을 3요소로 분석해 보는 습관을 들여보자. "저 벽의 색은 명도가 높고 채도가 낮은 베이지구나", "오늘 하늘은 채도가 특히 높은 파란색이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색채 언어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AR, VR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색 표현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색상, 명도, 채도라는 기본 개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견고한 기초 위에서 우리는 더욱 풍부한 색채 세계를 구축해 갈 수 있다.

COLOR THEORY 4편 - 색상 체계와 분류 방법 - 먼셀, 팬톤, CIE 색 공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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